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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독살설

겨울무지개 2006. 10. 22. 08:52

 

정조 독살설, 어디까지 진실인가? 화성천도설과 상왕설에 대해...


49세의 나이로 급사한 정조는 과연 독살당한 것일까?

 

정조가 죽은 뒤 세도정치 시대로 접어들면서 조선의 국운은 갑자기 쇠락한다.

 

이 때문에 정조의 죽음을 보는 시각은 죽음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정조가 독살 당했다는 의혹은 정조가 온몸에 번진 악성 종양으로 사망하기 직전 연훈방(烟熏方)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연훈방은 수은을 태운 연기로 치료하는 방법인데 10여 차례 이 치료를

 

받은 정조가 수은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치료 방법은 당시에도 커다란 물의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의혹을 가중시킨 것은 연훈방을 건의한 의사인 심인(沈漮)이 당시 벽파의 지도자인 심환지의 먼 친

 

척이었다는 점이다. (심환지는 정조의 탕평책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 한데다가 정조 사후 정조가 이루어

 

놓은 사업을 철저하게 파괴한 인물이다). 이 연훈방이라는 치료는 최근 어느 한의대의 연구 자료에 의하

 

면, 수은중독을 일으킬 가능성은 있지만 당시 약재의 처방대로라면 독살로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한

 

다.

 

정조의 죽음을 두고 독살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대에 정조의 신임 하에 새로이 부상하는 남인계열의

 

입장이라고 파악되기도 한다. 정조의 인사 정책에 따르면 한 나라의 재상감은 8년의 시련 뒤에 8년을 믿

 

고 쓴다 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당시가 남인 세력이 새로이 부상할 시기이고 이것에 위협을 느낀 노론의

 

강경파인 벽파측에서 미리 손을 쓰지 않았나 하는 시각이다.

 

정조의 독살설에 대한 또 다른 근거는 정조가 가끔 거론한 '비상조치설'이다. 반대파의 격렬한 반대로

 

정국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지면 정조는 비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한다. 이 비상조

 

치설에 대해서는 수도를 화성으로 옮기겠다는 화성천도설과 정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으로 은

 

퇴한 뒤 수원에 머물면서 순조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사업을 추진시키겠다는 상왕설 중의 하나

 

라고 분석되고 있다.


 

화성천도설 화성천도설에 대해 특별히 기록하고 있는 자료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조가 탕평책을 추

 

진하면서 부딪히는 기존 세력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과감한 사회 개혁으로서 화성천도를 생각했다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정조가 화성천도를 하려 했다고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첫째, '장용영'이라는 정조대의 강력한 친위 군대를 화성에 주둔시킨 것. 둘째, 화성의 남문과 북문을 각

 

각 장안문(長安門)과 팔달문(八達門)이라고 이름 붙인 것. '장안'은 중국 한나라 이래 번화한 수도의 대

 

명사로 쓰였고, '팔달' 역시 사방으로 통하는 중심지를 의미하여 수도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

 

이다. 셋째, 기존의 거상, 부호들을 화성으로 끌어들여 화성을 신흥 상업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는 점. 경제의 중심 세력이 화성으로 옮겨 오게 되면 기존의 노론 세력의 경제적 바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원성이 한성에 비해 크기가 턱없이 작고, 경제적 지원의 규모도 서울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

 

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점 등을 생각해보면 정조는 화성을 장기적인 정책의 거점 정도로로 생각했

 

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상왕설 혜경궁이 쓴 {한중록} 등의 기록에는, 정조는 혜경궁에게 "내가 하지 못할 일을 아들의 효도로

 

이루고 돌아가 지하에서 (아버님을) 뵈오면 한이 풀리겠다"라고 말하였다 한다. 여기서 정조의 사업이

 

란 사도세자와 혜경궁을 정식 왕과 왕비로 추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조는 영조로부터

 

자신의 처분에 관한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사도세자를 왕으로 천양하고 추존하는 사업을 할 수 없는 상

 

황이었다. 그래서 아들인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으로 은퇴하여 자신이 못다한 일을 순

 

조를 통해 이룩해보려 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는 것이 상왕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왕설은 몇 가지 자료로 보아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그 당시 정조가 과연 상

 

왕으로 은퇴한 뒤에도 순조를 통해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에 대한 점이다.

 

권력의 속성 상,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남인과 노론과의 세력 다툼)를 생각했을 때 상왕으로 한

 

번 은퇴하면 그의 권력이란 그리 큰 힘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 상왕설의 주 내용은 사도세자

 

의 추존 문제이다. 그러나 정조가 사사로운 문제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문

 

제를 추진하였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정조로서 상왕설을 생각하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였을 것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정조 독살설이 부정된다. 정조가 상왕으로 은퇴할 생각이였다면 당시 위

 

협을 받고 있는 세력들이 구태여 독살하면서까지 정조를 퇴진시키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때, 정조의 독살설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고 생각한다.

 

(출처 : '조선 정조는 독살당했나요? 자연사인가요?'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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